Posted On 2026년 05월 25일

[서글프고 아픈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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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았다.
그중 80만 원은 늘 아들 집에 보탰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그냥 시골집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때.
며느리가 엄마한테 노인 냄새가 난대.”

나는 한마디만 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짐부터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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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옷들은 대부분
며느리가 안 입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자주 입던 옷 몇 벌만 골라
낡은 여행가방에 넣었다.

머리맡에 두던 혈압약,
혈당 측정기,
늘 쓰던 보온병도 하나씩 챙겼다.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 아들 집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다.
  • 며느리 얼굴도 굳이 보지 않았다.
  • 그 상황에서 말을 더 보태 봐야
    나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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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거실 입구에 서서
내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끝내 붙잡는 말은 없었다.

내가 가방을 끌고 나가려 하자
그제야 4만 원을 내밀며 말했다.

“길에서 뭐라도 사 먹어.”

나는 받지 않았다.
손만 한번 저어 보이고 그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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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표를 샀다.

세 시간쯤 걸리는 길.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든 건
해방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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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은 오래된 단층집이었다.

대문 자물쇠는 녹이 슬어 있었고,
마당에는 마른 잎이 수북했다.

방 안 가구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먼저 마당을 쓸었다.

탁자와 의자를 닦고,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집은 낡았어도
내 집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억지로 맞춰 줄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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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며느리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고,
아들은 간이 센 음식을 찾았다.

나는 두 사람 입맛 맞추느라
매일 다른 반찬을 만들었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부엌 정리했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저녁도 내가 했다.

내 연금 130만 원 가운데
내가 쓰는 돈은 50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80만 원은
전부 아들한테 줬다.

주택담보대출 갚는 데 보태고,
아이 키우는 데 보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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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에서 냄새날까 봐
늘 신경 썼다.

매일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세탁할 때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까지 썼다.

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건
핀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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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내려온 뒤에는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됐다.

아침에는 죽 한 그릇 끓여
김치와 함께 먹었다.

소박했지만 편했다.

오후에는 동네 장터에서 채소를 샀다.
신선했고, 값도 부담이 덜했다.

마당 한쪽 빈 땅도 다시 뒤집었다.

그곳에 푸성귀와 대파, 고추를 심었다.
반찬거리 하나쯤은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할 일 없을 때는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근처 사는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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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130만 원이면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남았다.

읍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도 다시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지금처럼 마음이 편해지면
혈압도 안정될 겁니다.”

나는 나를 위해 새 옷도 샀다.
이불도 새로 들였다.

집 안을 다시 정리해 놓고 보니
숨이 좀 트였다.

누구 허락 없이
내 돈으로 내 생활을 챙긴 게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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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지났을 때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며느리가 요즘 돈 문제로 자꾸 싸운다고 했다.
내가 매달 주던 80만 원이 끊기고 나니
생활이 팍팍해졌다고 했다.

대출 갚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며느리도 잘못한 걸 안다며
다시 들어와 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이제는 절대 그런 말 안 하겠다고도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난 여기서 잘 지낸다.
안 돌아간다.”

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

“너희 살림은 너희가 꾸려야 한다.
나는 이제 늙어서
내 집 지키며 조용히 살고 싶다.”

아들은 더 말하려 했지만,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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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아들은 가끔 전화를 했다.

다시 돈을 좀 보태 달라는 말도 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자식 인생까지
끝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평생 가족 챙기느라
내 몫을 미뤄 왔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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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생활에는
고부갈등도 없고,
돈 때문에 끌려다닐 일도 없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내가 정한다.

나는 그게 좋다.

늙어서야 비로소,
내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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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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