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손님

울타리가 없는 산골의 조그만 절에서는 가끔 도둑을 맞습니다.
어느 날 외딴 암자에
밤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밤손님이란 도둑을 점잖게 표현한 말입니다.
그날 밤 잠이 없는 노스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뒤꼍에서 이상한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가만보니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워 놓고 일어나려다 말고 일어나려다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한 눈에 무슨 일인지 눈치 채셨습니다.
밤손님이 뒤주에서 쌀을 한 가마 잔뜩 퍼내긴 했지만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스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지그시 밀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겨우 일어난 도둑이 힐끗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지게 지고 내려가게
노스님은 밤 손님에게 나직이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도둑은 지게를 진 채 허겁지겁 산 아래로 내뺐습니다.
이튿날 아침 스님들은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후로 그 밤손님은 도둑질을 그만두고 그 절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즉 노스님은 도둑을 잡지 않고 그냥 보내줌으로써 자비를 베풂으로써 오히려 어두운 구렁텅이에 빠져 사는 한 인간을 救濟한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습니다.

물건이란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