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던 시절 재미있게 보던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프로가 있었다.
희극배우인 구봉서와 배삼룡이 회사원으로 등장해 서민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폭소를 자아내게 했었다. 특히 배삼룡의 얼띠고 모자라는 바보같은 역할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날 화면에서 배삼룡의 근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병원 입원실 침대에서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멍한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웃음을 주던 그는 슬퍼 보였다. 그 얼마 후 같이 일하던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배삼룡 문병을 갔었어요.
딸이 간병을 하는데 병원비는 물론이고 그 딸이 밥 사먹을 돈도 없는 것 같더라고.
문병간 사람들이 조금씩 주는 돈으로 딸이 먹고 사는 거야.
너무 비참했어. 그래서 내가 울면서 배삼룡보고 ‘빨리 죽어’라고 했지.
네가 죽어야 네 딸이 살아’하면서 말이예요.”

인터뷰 도중에 그의 눈이 축축해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웃고 떠들면서 세상을 즐겁게 해 주던 구봉서씨도 배삼룡씨도 저세상으로 간 지 한참 되는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고독하게 죽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배삼룡씨는 자기를 배웅해준 딸이 있어서 행복했던 건 아닐까. 어제는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한 신경외과의사가 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장기간 입원을 한 막노동을 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엄마는 간병을 하고 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병원비를 댔죠. 오랜 병에 빚도 많이 졌더라구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서 추가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제가 그 집 형편을 알았기 때문에 수술을 오히려 말렸어요.
수술이 성공할 가능성도 없고 환자가 회복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딸은 끝까지 아버지 수술을 시키겠다는 거예요. 뭐 본인이 그러니 난들 어떻게 하겠어요?”

요즈음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게 가족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빨리 환자에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도사리고 있다.
그 의사가 말을 계속했다.

“예상대로 수술을 했어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어요. 더 나빠져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운명하실 때가 와서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죠. 오랫동안 앓은 환자는 얼굴이 퉁퉁 붓고 모습이 아주 흉했어요.
그런데 딸이 아버지의 얼굴을 손으로 계속 어루만지는 거예요.

마지막에 딸은 저 세상으로 가는 아버지를 꼭 껴안고 말하는 거예요. ‘아빠가 내 아빠여서 너무 행복했어’라고 말이죠.”

죽음을 선고했던 의사는 당시 광경이 강한 충격이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딸한테서 그런 감사의 말이 나올지 몰랐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딸은 아버지가 고생하면서 자기를 키운 걸 다 보고 자란 거예요.”

가슴이 울컥한 내용이었다.

죽음 저쪽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에게 딸의 보석같은 눈물과 이별의 말은 사막같은 힘든 세상을 터벅터벅 건너온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의 샘물은 아니었을까.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어머니와 이별을 하던 장면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뿌연 혼수상태 속에서 어머니의 영혼은 무얼하고 있을까.
아마도 평생 만나지 못한 북에 두고 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구석에 놓인 주전자 물이 얼음이 된 차디찬 방에서 주문받은 세타를 한코 한코 뜨개질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옆에서 나는 전과를 외우고 수련장을 풀며 공부했다.
속칭 명문학교라는 곳의 입시장에 나를 밀어 넣고 엄마는 산속의 얼음이 얼어붙은 물 속에 들어가 기도했었다. 엄마의 그런 땀과 피를 먹고 나는 자랐다.
그런 엄마와 영원히 헤질 때였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엄마의 발을 처음 봤다.

평생을 종종걸음을 치며 나의 손을 잡고 끌어온 굳은 살이 박힌 발이었다.
나는 고달픈 길을 걸어왔던 엄마의 험한 발을 어루만지며 인사했다.

“엄마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엄상익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