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
6백만 명이학살당하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비극적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개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아들 둘을 둔 어떤 일가족도
그렇게 수용소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수용소에 들어가서는 노동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먼저 처형하느냐 마느냐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 중 하나는 어리고 매우
병약하였습니다.
부모는 그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저 아이는 몸이 약해서 틀림없이 가스실로 끌려갈
텐데 어떻게 하나….”

강제노역에서 돌아온 일가족은 밤마다 서로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저녁에 아들의 얼굴을 보면 그 날은 생명을
부지한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둘러보니 몸이 약한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자는 이미 가스실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끌려갈 때 함께 있던 이들이 모자가 끌려가던
당시의 애끓는 모습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리고 약한 아들은 감시원이 끌고 가려 하자 마구
울며 발버둥쳤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참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울지 마라. 이 어미가 같이 간다.”

그러자 아들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당당하게 가스실로 걸어갔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의 길을,
자식 홀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함께 간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의 애통함에 함께 한 사랑입니다.

그리고”아버지의 술잔”이란 글 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밖에서는 대장이지만
집에서는 언제나 쫄병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어른인 척 하지만
어릴적 친구들 앞에서는
소년이 되곤한다.

엄마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도를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신문을 보는 척 하며 기도를 한다.

자녀가 늦게 들어올 때

엄마는
전화를 걸어 악을 쓰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어둠 속의 현관으로 나가서

막 돌아 온 자식의 신발이있는가
조용히 확인할 뿐이다.

엄마는
울었기 때문에 세수를 하지만

아버지는
울기 위해 세수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우는 것을 못 볼테니까…..

엄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갈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독일 격언에는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보다 더 숭고한 이름이 있을까요?
이 보다 더 감동적인 언어가 어디서 또 있게습니까?

어렸을적 자식들의 밥을 다 담아 주고,
나는 먼저 먹어서 배부르다고 웃으며 굶으신 어머니,

어머니가 굶고있는 것도 모르고 맛있게 퍼먹는
자식들을 모습을 보고,
미소 지으며 대견해 하시던 어머니,

묵묵히 지켜 보시며
자식을 기도로 응원하시던 아버지.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자식은 항상 부모님이 가시고 난 뒤에야
그립다고 변명합니다.

부모님의 고귀 한 사랑 앞에,
보고싶다,
그립다,
지금 살아계시다면,
이런 말도 가증스럽게 느껴지거늘.

오늘은 그렇더라도,
입에 발린 소리일지라도,
너,
이제야 철이 들었어,
살아 계셨을때 좀 효도좀 하지,

비난을 들을찌라도,
마음껏 불러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암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