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容恕]

헤밍웨이의 소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스페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신문에 광고를 냅니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나는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용서를 원하고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자는 한 제자가 평생을 통해 지켜야 할 것을 딱 한 가지만 알려달라는 요청에 ‘용서’라고 답했습니다.

법정스님은 “인생의 종점에서 용서 못할 일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용서 해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 또한 실수할 수 있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상처를 주고 실수를 하기에 “용서”라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용서를 잘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적다고 합니다. 심지어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았다고 합니다.

분노는 자신에게 채우는 족쇄며,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아닌 용서입니다.

용서를 선택하는 삶이 상대방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는 길입니다.

용서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 그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머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기에

용서는 사랑이자 이해이며, 결국 인간다움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인 것 같습니다.

분노는 마음을 갉아먹는 족쇄이지만, 용서는 그 마음에 평안을 안겨주는 열쇠라는 사실…

“용서(容恕)” 말하기는 쉬우나 성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단어가 아닌가 보여집니다.